간호사가 노년 남성에게 혈액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혈액 단백질 분석을 통해 여러 뇌질환을 구별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억이 흐려질 때 주의할 대목은 하나다. 치매인가가 아니라, 어느 병이 시작됐는가다.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루이소체치매는 초기 증상이 겹쳐 구별이 쉽지 않다.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다.
현재 이를 가려내려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뇌척수액 검사가 필요하다. PET 검사는 방사성 물질을 이용해 뇌의 단백질 축적을 확인하는 방식이고, 뇌척수액 검사는 허리에서 척수액을 채취해 단백질 변화를 분석한다. 비용과 부담이 커 검사를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혈액 한 번으로 이 차이를 가려내는 인공지능 모델이 나왔다. 1만7000여 명을 분석해 개발된 결과다.
스웨덴 룬드대 의대의 야코브 보겔 조교수 연구팀은 혈액 단백질 데이터를 활용해 주요 뇌질환 6가지를 동시에 구별하는 AI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2026년 3월 31일자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모델의 질환 구별 성능은 AUC 0.8 이상이었다. 여러 독립 데이터셋에서 검증한 결과다. 기존 접근보다 높은 예측력을 보였다. 인지 저하 예측에서도 임상 진단보다 높은 구별 능력을 나타냈다.
AUC(Area Under the Curve, 곡선 아래 면적)는 진단 정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질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얼마나 잘 구분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값이다. 1에 가까울수록 구별 능력이 높고, 0.5는 맞출 수도 틀릴 수도 있는 수준이다.
단백질 조합으로 질환 신호 구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전측두엽치매, 루이소체치매, 뇌졸중은 초기 단계에서 기억력 저하와 인지 변화, 행동 이상이 겹쳐 나타난다. 이 때문에 질환을 구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환자 한 명에게서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진단은 여전히 질환을 하나씩 구분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연구팀은 국제신경퇴행성 단백질체 컨소시엄(GNPC)의 데이터를 활용해 혈액 속 수천 개 단백질의 농도와 조합을 분석했다. 이 컨소시엄은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퇴행성 질환 환자의 혈액 단백질 정보를 대규모로 수집해 공유하는 국제 공동 연구 네트워크다.
단백질 조합은 질환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염증과 신경 손상, 대사 변화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질환별 특징을 가려냈다.
이 분석은 특정 단백질 하나가 아니라 여러 단백질이 만들어내는 전체 조합을 해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질환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까지 포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같은 진단, 다른 병…숨은 차이 드러났다
연구에서는 같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단백질 조합이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일부는 다른 질환과 더 가까운 특징을 보였다. 이는 환자 한 명에게서 두 가지 이상 질환이 함께 존재하는 ‘혼합 병리’ 가능성을 보여준다. 같은 이름의 질환이라도 실제 몸 안에서는 다른 경로로 진행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임상 진단만으로는 병의 실제 상태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도 드러난다.
기억력 저하는 하나의 병으로 설명되는 현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변화가 겹쳐 나타나는 결과일 수 있다.
혈액 기반 보조 도구…진단 방식 바뀌나
다만 이번 결과를 바로 진단 기준으로 쓰기에는 한계가 적지 않다.
혈액 단백질 분석은 측정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연구에서는 정밀한 질량분석 기술이 사용됐지만, 이를 일반 검사 환경에 맞게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질환 구별 능력은 확인됐지만, 진단을 확정하는 수준으로 활용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연구 대상이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구성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지역 인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 분석이 기존 검사를 대체하기보다 보조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질병을 확정하기보다는 어떤 변화가 시작됐는지를 가늠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AI 도입으로 수만 명 규모 데이터를 한 번에 해석하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과거 수년이 걸리던 분석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고 있다.
이 변화는 진단의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병 이름을 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 안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시작됐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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