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이 두 팔을 들며 활짝 웃고 있다. 31세 여성이 구개열·난청을 비롯해 자폐증, 지적장애, 발작장애, 관절염, 천식 등 모두 열한 가지의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사진은 기사 속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녀에게 운명의 질곡은 가혹했다. 31세 여성이 구개열·난청을 비롯해 자폐증, 지적장애, 발작장애, 관절염, 천식 등 모두 열한 가지의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는 사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마이애미 라킨 커뮤니티 병원 연구팀은 31세 히스패닉계 여성이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위해 원격 진료(비대면 진료) 받은 사례를 분석해 최근 학계에 보고했다. 이 환자는 입 천장이 갈라진 채 태어나 어릴 때 구개열 수술(봉합 수술)을 받았고, 10대 초반에는 감각신경성 난청 때문에 오른쪽 귀에 인공 와우(달팽이관)를 이식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여성 환자는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지적장애를 안고 있었고, 정신병적 특징이 있는 양극성 장애와 불안 장애까지 겹쳐 심리적으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신체적으로도 다발성혈관염을 동반한 육아종증(GPA)이라는 희귀한 자가면역병과 류마티스 관절염, 레이노 현상(청색증과 통증), 경증 지속성 천식, 발작 장애 등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그녀가 매일 먹는 약은 그야말로 ‘한 움큼’이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암로디핀, 메트포르민, 발프로산, 토피라메이트, 파록세틴, 리스페리돈 등 항경련제와 정신과 약물, 혈압약과 당뇨약이 뒤섞인 수십 알의 약봉지는 이 환자의 힘겨운 일상을 보여준다. 한때는 리툭시맙과 메토트렉세이트 같은 강력한 면역억제제까지 투여받았으나, 약물 공급 문제로 10개월간 투약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검사에서는 유전성 콩팥(신장)병인 알포트증후군까지 확진됐다. 이 병은 기존에 앓던 자가면역병인 혈관염과 증상이 겹쳐 진단도 쉽지 않았다. 이 병은 그녀의 콩팥 기능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환자가 겪고 있는 지속적인 단백뇨가 단순한 염증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콜라겐 합성에 결함이 생겨 발생하는 알포트증후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의료진은 자가면역병과 유전병이 얽힌 매우 드물고 까다로운 사례라고 말했다. 자칫 증상만 보고 면역억제제를 너무 많이 처방했다면 환자의 몸이 견디기 힘들 수 있었다. 다행히 연구팀은 유전자 정밀검사로 정확한 원인을 찾아냈고, 불필요한 치료를 피하고 콩팥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었다.
숱한 병의 굴레 속에서도 그녀는 정기 검진과 약물 치료를 이어가며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의료진은 앞으로도 류마티스내과, 신장내과, 신경과, 폐과 등 여러 진료과와의 긴밀한 협진으로 이 환자의 건강을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례 연구 결과(Coexistence of Proteinase 3 (PR3)-Positive Granulomatosis With Polyangiitis and Genetically Confirmed Alport Syndrome in a 31-Year-Old Female Patient: A Diagnostic and Management Challenge)는 최근 국제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11가지 병마와 싸워온 31세 여성, 다중병(다중질환)이 많은 이 시대의 가혹한 단면
이 환자의 사례 연구는 현대 의학이 직면한 힘든 숙제인 다중병(Multimorbidity, 다중질환)의 비극적인 전형을 보여준다. 보통 두 가지 이상의 만성병을 앓는 상태를 뜻하는 다중병은 이제 고령층에서는 매우 흔하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8명이 이 굴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이 31세 여성의 사례는 차원이 다르다. 노화로 서서히 병이 드는 일반적인 경로를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 구개열, 유년기의 난청, 청년기를 덮친 자폐증과 지적장애,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자가면역병과 유전병...
그녀의 비교적 짧은 생애는 삶의 단계마다 새로운 병마가 들이닥친 ‘질병의 연대기’ 같다. 특히 희귀병인 다발성혈관염을 동반한 육아종증(GPA)과 유전병인 알포트증후군이 함께 나타난 것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례는 뚜렷한 메시지를 던진다. 질병을 하나씩 따로 떼어내 보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이런 다중병 환자를 제대로 진단·치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의료진이 단백뇨 하나만 보고 기존 혈관염 치료제의 복용량을 크게 늘렸다면, 몸이 쇠약한 이 환자는 약물 부작용을 견디지 못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그나마 운이 좋았다. 연구팀이 유전자 정밀검사로 11번째 병인 알포트증후군을 정확히 찾아냈고 여러 진료과가 협진했다. 그 덕분에 치명적인 부작용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의학계에 또 다른 숙제가 주어졌다. 이젠 환자의 전체 삶을 관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다. 하루에도 수십 알의 약에 의지해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 여성 환자는 삶과 건강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 환자가 앓는 알포트증후군은 혈관염과 어떻게 다른가요?
A1. 두 병이 모두 콩팥을 공격해 단백뇨를 일으킨다는 점은 같지만, 발생 원인은 완전히 다릅니다. 알포트증후군은 제4형 콜라겐 유전자의 변이로 콩팥 필터(기저막)가 구조적으로 약해져 발생하는 유전병입니다. 반면 다발성혈관염을 동반한 육아종증(GPA)은 면역 체계가 자기 혈관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면서 염증을 일으키는 자가면역병입니다. 이 사례처럼 두 병이 겹치면 증상만으로는 원인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Q2.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너무 많은데, 약물끼리 충돌할 위험은 없나요?
A2. 네, 매우 위험합니다. 이를 ‘다약제 복용’(Polypharmacy) 문제라고 하며, 약물 간 상호작용 때문에, 한 병을 고치려다 다른 장기가 망가지는 처방 연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유전자 검사로 이 환자의 단백뇨가 염증이 아닌 ‘유전적 구조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 덕분에 독한 면역억제제 대신 콩팥보호제(로사르탄)를 처방해 약물 독성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Q3. 다중병 환자를 위한 현대 의학의 치료 방향은 무엇인가요?
A3. 과거에는 각 진료과가 해당 질병만 따로 치료했다면, 이제는 여러 전문의가 동시에 머리를 맞대는 ‘다학제 협진’과 환자 개인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는 정밀의학이 중요합니다. 특히 10가지 이상의 병을 앓는 다중병 환자에게는 단순히 모든 병에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전체적인 삶의 질을 고려해 약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불필요한 처방을 걷어내는 통합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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