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깨어 있는 남성. 수면 부족은 뇌전증 환자의 치매 위험과 연관된 요인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짧게 자는 것뿐 아니라 오래 자더라도 수면이 자주 끊기면 뇌 회복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영국 연구팀이 48만여 명을 12년간 추적한 결과, 수면 상태가 나쁜 경우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특히 뇌전증 환자에서는 그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
잠 부족한 뇌전증 환자, 위험 격차 확대
옥스퍼드대 신경과 진유 타이 박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성인 약 50만 명의 건강 정보를 장기간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 자료)에 등록된 48만2207명을 평균 12년간 추적했다. 국소뇌전증 환자 3788명, 이전에 뇌졸중을 앓았던 사람 6372명, 일반인 47만2047명이 포함됐다. 연구 결과는 미국신경과학회 공식 학술지 《뉴롤로지(Neurology)》 4월 22일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하루 6~8시간 수면을 ‘최적 수면’, 그보다 짧거나 긴 경우를 ‘불량 수면’으로 분류했다.
8시간 이상 자더라도 중간 각성이 잦거나 수면의 깊이가 낮으면 ‘불량 수면’이 될 수 있다. 대체로 장시간 수면이 관찰된 집단에서는 우울증, 만성질환, 생체리듬 교란 등이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된다. 수면 시간이 길다는 점보다는 뇌가 회복되는 구조가 제대로 유지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수면 ‘길이’보다 ‘구조’ 중요
전체 추적 대상자 가운데 12년 동안 5826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뇌전증 환자 중 최적 수면군의 치매 발생률은 2%, 불량 수면군은 5%였다. 이전에 뇌졸중을 앓았던 사람은 각각 4%와 6%, 일반인은 1%와 2%였다.
나이·성별·교육 수준·소득 수준 등 치매 위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반영한 뒤에도 불량 수면 상태의 뇌전증 환자는 최적 수면 일반인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약 5배 높았다.
위험비 5.15는 같은 조건에서 비교했을 때 치매 발생 위험이 약 5배 수준이라는 의미다. 이전에 뇌졸중을 앓았던 사람은 약 3.5배, 일반인은 약 2배 수준이었다.
발작과 수면, 서로 영향을 주는 구조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뇌의 정리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깊은 수면 단계에서는 노폐물 제거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도 이뤄진다. 이러한 변화가 반복되면 장기적으로 신경퇴행성 변화(뇌세포 기능 저하와 치매 등 인지기능 저하)와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이러한 수면–뇌 기능의 연결은 뇌전증 환자에서 보다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발작이 잦으면 수면이 깨지고, 수면 부족은 다시 발작 빈도를 높인다. 뇌 노폐물을 청소하는 글림프계 기능까지 떨어지면 치매와 관련된 물질이 쌓일 수 있다. 뇌전증 환자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수면 개선 효과, 질환별 차이
과거에 뇌졸중을 앓았던 사람의 경우 수면 상태를 개선해도 치매 위험이 일반인보다 유의미하게 줄지 않았다. 이에 비해 뇌전증 환자에서는 수면과의 관련성이 컸다. 같은 수면 부족이라도 기저 질환에 따라 위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차이는 질환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뇌졸중은 혈관 손상과 뇌 구조 변화가 이미 진행된 상태여서 이후 치매 발생 위험은 손상 정도와 재발 여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뇌전증에서는 발작과 수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수면 변화가 발작 빈도에 영향을 직접 줄 수 있다.
약 외에 고려할 수 있는 수면 관리
수면 자체는 중요하지만, 이로 인한 효과는 질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뇌전증 관리에서 약물 치료가 중심이며, 수면 관리는 보완 요소다. 수면 부족은 발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어 규칙적인 수면이 권고돼 왔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수면 관리가 약물 치료와 함께 뇌전증 환자의 치매 위험 관리에 참고할 수 있는 근거를 대규모 장기 추적 자료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다만 수면 시간을 참가자 스스로 보고한 자료에 기반했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뇌전증협회에 따르면 국내 환자는 약 37만 명이다. 이 가운데 국소뇌전증(뇌의 특정 부위에서 시작해 다른 부위로 퍼질 수 있는 발작 유형)이 약 78%를 차지한다. 전체 환자의 약 30%는 약물로도 발작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전증 환자에게는 수면의 ‘연속성’이 관건이다. 밤중에 여러 번 깨거나 코골이·무호흡이 동반되면 자는 시간이 길다고 해도 회복 효과는 떨어진다. 이 경우 신경과 진료와 함께 수면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발작 조절과 수면 개선을 함께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원칙은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수면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매일 취침·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고, 수면 시간을 6~8시간 범위에서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늦은 시간 카페인 섭취를 피하는 습관은 수면의 질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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